전라도의 최고의 명문 학교 '나주 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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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나주 향교의 최초 건립 시기는
고려 성종 6년이었지만
그 때 당시 모습은 안 보이고 태조 7년에
중수된 모습만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주 향교의 건물 배치는 앞에 제사 공간이 있고
뒤에 학습 공간이 있는
전묘후학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주 향교의 정문인 외신문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닫혀 있습니다.
외신문 앞에 “대소인원개하마”라는
하마비가 있는데 향교나 서원은
모든 예의를 갖춰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하마비가 있습니다.
이 하마비는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든 그 앞을 지날 때 말에서
내리라는 표식입니다.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나주 향교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로 되어 있으며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27위의 위패를
모신 공간으로 건물의 크기나 모양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대성전 중
으뜸으로 인정받고 유교 건축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서울 성균관도 나주 향교 대성전을 참고해서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명륜당은 강학하는 공간 즉
유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으로 양 옆에는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그들이 잠을 자고 지낼 수 있는
기숙사 동재, 서재가 있습니다.
당시 나주 향교는 호남에서 제일 명문
학교로 유생 10명이 전원 과거에
급제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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