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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읍치의 역사성과 상징성의 대표 '금성관(錦城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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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금성관은 19721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2호에 지정되었다가 나주 읍치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원래 자리에 원형을 잘 지키고 있으며

규모와 형태 면에서 다른 객사와 뚜렷한

차별성을 띤 격조 높은 건물로

역사ㆍ건축ㆍ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1025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금성관은 나주목에 있는 객사로

객사는 고려ㆍ조선 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되었던 관사를 말합니다.

금성관은 조선 시대 객사로

나주객사의 별칭입니다.

객사는 관찰사가 관할 구역을 순행할 때

업무를 보는 곳이며 중앙의 사신이 묵던 곳입니다.

금성관은 성종 18~20년쯤에 이유인 목사가

건립했으며 현재 규모는 1617년에

갖추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1775년과 1885년에 중수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군 청사로 사용되었다가

1976년 보수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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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금성관은 정청인 금성관, 왼쪽은 서익현

오른쪽에는 동익현으로 되어 있으며

양쪽의 날개가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동쪽,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익현,

동익현이라고 합니다.

동익현은 금성관의 동쪽에 있는 건물로 관찰사가

나주에 있을 때 집무처로 사용했으며

3품 이상의 관리가 묵던 곳입니다.

조선 초 이행 관찰사가 벽오동 나무 근처에 있다 해

벽오헌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서익현은 금성관 서쪽에 있는 건물을 말하며

당하관(3품 이하)인 관리가 묵던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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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금성관에 들어가면 왼쪽에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데요

동학농민운동 때 나주 읍성의 수성군이

동학군과 싸워

나주성을 지킨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95년에 세워진 금성토평비 등을 포함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비석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나주 곰탕 하얀집은 금성관 정문 앞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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